맨위로가기

심수현 (조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심수현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청송 심씨 가문 출신이다. 1704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숙종, 경종, 영조 시대를 거치며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영조 즉위 후 병조판서, 우의정을 거쳐 1732년 영의정에 올랐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663년 출생 - 코튼 매더
    코튼 매더는 미국의 회중교회 목사이자 저술가로,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미국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을 저술하고 세일럼 마녀 재판 당시 마녀 혐의자 처형을 옹호하기도 했다.
  • 1663년 출생 - 레 희종
    레 희종은 후 레 왕조의 황제로, 찐딱의 섭정 하에 꼭두각시 군주로 지냈으나, 그의 치세는 정화지치라 불리며 평화와 질서를 가져왔다.
  • 조선의 충청도관찰사 - 심의면
    심의면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인순왕후의 방계 후손이자 심의겸의 종9대손이며, 문과 급제 후 관료 생활을 했으나 흥선대원군과의 악연으로 몰락하여 유배지에서 사망했고, 감고당 불법 개축 사건으로 탄핵을 받았다.
  • 조선의 충청도관찰사 - 정순붕
    정순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문과 급제 후 신진사류로 개혁을 시도했으나,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권력을 추구하며 변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조선의 한성부판윤 - 심온
    심온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태종 때 중용되어 세종 즉위 후 영의정에 올랐으나 역모 혐의로 사사된 후 문종 때 복권되었으며, 드라마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 조선의 한성부판윤 - 심상규
    심상규는 정조의 총애를 받아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어 순조 시대에 영의정을 역임했으며, 규장각 직각, 승지 등 요직을 거쳐 순조 사후 헌종을 보필하고 남한산성 광주유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심수현 (조선)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심수현
한자 표기沈壽賢
출생일1663년
출생지조선 한성부
사망일1736년
사망지조선 한성부
거주지조선
국적조선
본관청송
자(字)기숙(耆叔)
호(號)지산(止山)
소속소론
학력1704년(숙종 30)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
직업문신 · 정치인
아버지홍문관 응교 증 영의정 심유(沈濡)
어머니증 정경부인 백천 조씨
배우자초취 : 증 정경부인 전의 이씨
후취 : 정경부인 광주 안씨
형제심제현 (형)
심경현(동생)
심공현(동생)
자녀5남 4녀
심육(장남)
심악(차남)
심약(삼남)
심필(사남)
심발(오남)
친척조석윤 (외조부)
홍진보(사위)
홍양호(외손자)
심대윤(고손자)

2. 가계

심수현의 가계는 조선의 명문가 중 하나인 청송 심씨 가문으로, 여러 대에 걸쳐 고위 관직자를 배출하였다. 8대조 심연원은 영의정을 지냈고, 7대조 심강명종의 국구였다. 6대조 심의겸은 서인의 초대 영수였으며, 5대조 심엄은 옥과현감을 지냈다. 고조부 심광세는 홍문관 응교, 증조부 심억은 한성부 서윤, 조부 심약한은 증 좌찬성을 지냈다. 아버지 심유는 홍문관 응교를 지냈고, 어머니는 대제학 조석윤의 딸인 증 정경부인 백천 조씨이다.

심수현에게는 형제 심제현, 심경현, 심공현이 있었다. 장남 심육은 소론 산림으로 활동했고, 차남 심악은 이조참판을 지냈다. 그 외 아들로는 심약, 심필, 심발이 있다. 딸들은 각각 정석기, 홍진보, 정양순, 이익윤에게 출가하였다. 외손자로는 강화학파의 대학자인 홍양호가 있다.

2. 1. 직계

2. 2. 형제자매

2. 3. 자녀

2. 4. 손자 및 외손자

2. 5. 증손자 및 고손자

3. 생애

3. 1. 숙종조

1704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 강원도 암행어사, 사간원 헌납, 의주부윤, 승지, 양양부사, 충청도 관찰사, 형조참의, 경상도 균전사를 역임했다.

3. 2. 경종조

심수현은 승지, 강화부 유수, 대사헌, 이조참판 겸 세자시강원 좌부빈객,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겸 산릉 제조를 지냈다.

3. 3. 영조조

1724년(영조 즉위년) 병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겸 지경연관사가 되었다.[1] 비변사 당상 겸 유사 당상도 겸하였다.

1725년(영조 1년) 금위대장을 겸하였다.[2] 이후, 지중추부사, 병조판서 겸 지경연관사 겸 세자시강원 빈객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1727년 우의정, 1729년 판중추부사, 1732년(영조 8년) 영의정 겸 공조판서가 되었다.[3]

1734년 영의정에서 물러나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3. 4. 정치 활동

4. 평가

참조

[1] 역사기록 영조실록 1권, 영조 즉위년 10월 3일 계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 역사기록 영조실록 3권, 영조 1년 1월 15일 갑인 4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3] 역사기록 영조실록 32권, 영조 8년 12월 26일 기묘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